Who was the general with beautiful heart
리처드 위트컴(Richard Whitcomb, 1894~1982) 장군
어느 한국인보다도 더 한국을 사랑한 미국인 리차드 위트컴 장군. 부산역 대화재 이재민 돕기, 메리놀병원과 부산대 설립에 공이 큰 미국인 장군 “Do you know General Richard Whitcomb (1894-1982)?”
General Whitcomb was the commander (brigadier general) of the US military base in Busan from 1953 to 1954, and was a person who did many good deeds for the orphans in the region and war. It has been given modifiers such as ‘the father of orphans in the Korean War’ and ‘the person who loved Korea more than the Koreans’.
파란눈의 구세주 리차드 위트컴 장군의 흔적을 찾아서
The story of
전 유엔군 위트컴 장군
부산을 사랑한 장군, 리처드 위트컴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에서 열린 제39주기 위트컴 장군 추모식에 참석한 내빈들이 위트컴 장군의 묘역에 헌화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에 다양한 지원사업을 펼쳤던 리처드 위트컴(사진) 장군을 기리는 기념조형물 조성사업이 시민의 지지를 얻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에 위트컴 장군의 활동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특히 한국전쟁의 폐허를 재건하기 위해 군법까지 어겨가며 원조활동을 펼쳤던 그의 선행이 부산시민에게 새로운 울림으로 전달되고 있다. 오늘은 한국전쟁의 힘들었던 시기, 몸과 마음이 피폐했던 부산사람에게 희망을 심어준 대한외국인 위트컴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부산을 사랑한 장군, 리처드 위트컴
1953년 11월 27일. 부산 중구 영주동 판자촌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처음에는 작은 불씨였지만, 피란민들이 모여 살던 판자촌은 삽시간에 불바다가 됐다. 29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무려 3만여 명의 피란민이 집을 잃었다. 하지만 모든 물자가 부족했던 시절,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런 그들에게 먼저 손을 내민 사람이 당시 부산지역 군수사령관으로 재직 중이던 위트컴 장군이었다. 그는 군법을 어기면서까지 이재민에게 군수물자를 나눠줬고, 미의회 청문회에까지 소환됐다. 하지만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게 아니다.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다”고 말한 위트컴 장군의 호소는 의원들의 기립박수를 이끌어냈고, 장군은 구호금까지 받아 부산으로 돌아왔다.
장군의 부산 사랑은 계속 이어졌다. 밀려드는 피란민으로 부족한 의료시설을 확보하기 위해 기금을 마련하기로 마음 먹은 그는 미군 장병의 월급을 1%씩 모으는 운동을 벌였다. 심지어 직접 갓을 쓰고 도포 차림으로 거리로 나가 모금 캠페인을 벌여 미국의 ‘라이프’ 잡지에 소개되기도 했다. 덕분에 메리놀병원 등 대형 병원이 부산 곳곳에 세워졌다.
부산의 젊은이가 양질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승만 대통령을 설득해 장전동에 50만여 평의 부지를 제공받았고, 여기에 건축자재와 공병부대를 지원해 현재의 부산대 설립에 큰 기여를 했다.
이외에도 주거지 조성, 도로 건설, 고아원 건설 등 전후 부산 재건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친 그는 전역 이후에도 한국으로 돌아와 ‘한미재단’을 설립해 전쟁고아를 지원했고, 북한지역 미송환병사 유해 발굴에도 힘썼다. 1982년 7월 11일, 장군은 생의 마지막 순간 자신을 한국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현재 남구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됐다. 한국전쟁 참전국 장군 중 유일한 사례였다.
전 유엔군 위트컴 장군 부인 한묘숙 여사 별세…부산대학교 장 거행
전 유엔군 부산군수사령관 고(故) 리차드 위트컴(Richard S.Whitcomb,1895~1982) 장군의 미망인 한묘숙 여사(위트컴 희망재단 이사장)의 장례식이 4일 부산대학교 장(葬)으로 거행된다. 서울에서 거주해온 한 여사는 건강이 악화돼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던 중 지난 1일 저녁 9시 향년 90세로 별세했다.
부산대학교는 유족과의 협의를 거쳐 전호환 총장을 장례위원장으로 하는 장례위원회를 구성해 한 여사의 영결식을 부산대학교 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3일 밝혔다. 이미 양산 부산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장전캠퍼스 대학본부동 1층에 분향소를 마련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장례식은 4일 오전 8시30분 양산부산대학교 병원에서 발인을, 오전 10시 부산대 내 10.16기념관에서 영결식을 거행한 뒤 오후 3시 남구 대연동 유엔공원묘지내 고 위트컴 장군 묘역에 안장하는 순으로 진행된다.
유족은 자녀 민태정, 자부 민옥린, 손자·녀 민경동·영동이 있다. 부산대 전자공학과 김재호교수가 양자로 빈소를 지킨다. 부산대는 영결식에 주한 미국대사와 주부산 미국영사, 주한 미8군 사령관과 주한 미해군사령관 같은 인사를 초청했다.